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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빈, 〈 임진왜란 초기 公州 의병의 활동과 성격〉, 《역사와 담론 71호》, 2014년, 호서사학회


본 논문은 임진왜란 초기 충청우도의 중심 고을이었던 공주의 상황과 지역민의 의병 활동에 대해 살핀 글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공주를 비롯한 충청우도 지역은 일본군의 침입로에서 비켜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직접적인 참화를 입지 않았고, 육로와 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공주는 삼남지방의 지방관과 조관들이 모이거나 경유하는 고을이었다. 이 시기 공주 사람들도 의병에 참여하였는데, 공주의 사족들은 독자적인 거병을 한 것이 아니고, 주로 공주향교의 제독관으로 근무했던 조헌의 4차 기병시 그의 막하에 동참하였다. 조헌은 당시의 관료 조직 생활에는 다소 부합하지 않았던 인물로 종종 물의를 일으켰으나, 호서지역 유림들의 중망을 한 몸에 받고있었기 때문에 공주에서의 거의가 성공할 수 있었다.

 

공주 출신의 신난수, 장덕개, 노응탁 등은 조헌 의병에 동참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당시 공주는 사족세가 강한 고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주 사족의 거병이 주도적인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공주 출신의 승려 영규가 의승장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조헌과 영규, 그리고 관찰사인 윤선각에 대한 묘사와 역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