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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조헌상(趙憲像)`의 변화를 통해 본 조선후기 시대정신의 추이>, 《역사와 현실 93호》, 2014년, …


조헌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다채로운 표상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조선후기의 정치·사상사적 지형과의 연결 선상에서 분석해보았다. 아울러 이러한 분석의 과정을 통해 당대 역사의 흐름, 특히 ‘중화질서’라는 개념으로 특정할 수 있는 동아시아 세계체제 내에서의 조선의 자리매김, 혹은 그를 위한 당대인의 노력의 과정에 대한 고찰 또한 함께 진행하였다.

 

조헌에 관한 개인적 기억의 편린들이 ‘조헌상’을 형성하는 원형적 자료로 갈무리되는 과정, 이러한 단편적 기억이 후대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면서 점차 사회적 기억으로 전화되어 갔던 과정 속에서 조헌이라는 개인의 표상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무수한 순절인의 한 사람에 불과하였던 조헌은 이제 춘추의리와 중화질서의 수호자로서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고, 성리학적 학문의 전통이 형성되어 가던 시기의 수많은 지식인 중 하나였던 조헌은 정통 학문을 계승하여 대의를 밝힌 도학자로서 높은 위상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중국을 오고간 수다한 사행인의 한 명에 불과했던 조헌은 중화의 문물을 도입하여 ‘조선의 화화(華化)’를 공고히 하려 힘썼던 선구적 지식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명·청 교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전통적 세계관과 자존의 전거가 일거에 상실된 후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했던 당시의 지식인들, 조선후기 사상계에 다시 한 번 급격한 분화가 진행되었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던 전환기의 지식인들. 그들에게 있어 조헌이라는 한 개인을 둘러싼 기억의 잔해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요구하였던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자양분에 다름 아니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