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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趙憲의 <朝天日記>에 대한 소고〉《온지논총 40호》, 2014년, 온지학회

1574년(선조 7) 성절사 박희립(朴希立)의 질정관 조헌(趙憲: 1544~1592)이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쓴 『조천일기』를 통하여 당시 조헌이 명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조헌의 『조천일기』는 조헌 사후 100여 년이 흐른 뒤 세상에 전해졌으며, 이는 1748년(영조 24)에간행된 중간본 『중봉집(重峰集)』 권 10, 11, 12에 수록되어 있다.

 

권 10과 11에 수록된 『조천일기』는 5월 11일 궁궐에서 배사(拜辭)하는 것부터 8월 4일 북경에 도착, 9월 5일 북경을 출발, 9월 14일 영평부를 출발하는 것까지 일기로 기록되었으며 날짜, 간지, 날씨, 시간의 순서에 따라 노정과 경험한 일을 순차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일기 중간에 감흥을 적은 시를 쓰기도 하였다. 권 12에는 중국에서 읽은 「중조통보(中朝通報)」를 1574년 6월1일부터 8월30일까지 날짜별로 정리해 놓았으며, 「질정록」을 두었다.

 

조헌은 명나라 생활 풍속 중 상사(喪事)와 장례풍습, 관인들과 유생들의 탐욕스러움, 기복신앙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백성의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은 명나라 조정에서 시행하는 조세에 대해 자세하게 묻고 기록해 두었다. 이를 통해 당시 명나라 조세를 살펴 볼 수 있으며, 구체적 생활묘사를 통하여 당대 조선과 명나라 사회상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이는 조헌의 『조천일기』가 공식적 사행 보고 형식의 건조한 서술이 아닌 명나라 사람과의 문답(問答)을 통한 현장감 있는 서술로 앞 시기의 사행문학보다 더 자세하게 명나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당대 지식인들이 명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단면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