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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원, 〈중봉 조헌의 의리사상〉, 《동양철학연구 39호》, 2004년, 동양철학연구회

본 논문은 중봉 조헌의 실천적 의리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여본 논문이다. 일반적으로 중봉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단지 임진왜란시 의병장으로서 활동하다 순절한 의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중봉은 유교 경전은 물론 천문 지리에 이르기까지 박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주자학에 대한 학문적 이해가 매우 깊은 유학자로서 문무를 겸한 인물이다.

 

특히 중봉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정자와 주자의 도학사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전 생애에 걸쳐 일관되게 위기지학을 실천하였으며, 당시 명나라의 명나라 선진문물을 보고 돌아와 올린 상소문에서 당시의 피폐한 현실상황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동환봉사」에 담겨 있는 중봉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분야 전반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개혁안 들은 율곡의 실학정신을 계승하여 더욱 자세하게 밝힌 내용들이다. 이러한 그의 실학사상은 후대 박제가를 비롯한 여러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중봉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년전부터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다양하게 제시하였으며, 특히 「영호남비왜지책」에 밝힌 8가지 대비책들은 모두 선견지명을 갖고 있는 적중된 작전이었음이 후대에 입증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봉은 몸소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청주성을 함락하고, 이어 금산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절하였다. 당시 역사적 사명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오직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일관되게 의리를 실천하고 살신성인과 사생취의의 의리정신을 발휘한 그의 의리사상은 후대의 민족정기와 호국정신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